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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마니산은 해발468m의 높이로 세 봉우리가 나란히 서있어 먼곳에서 보면 그 모양이 아름답고 웅장한 명산으로 참성단은 그 중간 봉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올라서서 보면 남쪽으로 서해의 여러섬이 보이고 맑은날에는 북쪽으로 개성의 송악산이 보입니다.

마니산 정상의 참성단은 고려사나 신동국여지승람에는 단군이 천제를 올리던 곳이라 전하고 있는데 경주의 첨성대처럼 기초는 하늘을 상징하여 둥글게 쌓고 단은 땅을 상징하여 네모로 쌓아 하원상방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단군은 북한의 묘향산에서 출현하여 그후 평양에 도읍하여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고 다음에 기자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산신이 되었다라고만 되어있어 마니산과 참성단에 대한기록이 나와 있지 않으나 여지승람에는 단군이 평양에 도읍한 후 황해도에 있는 구월산에 옮겨 산신이된후에 이 마니산에서 지냈다는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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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 참성단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는 천제를 지내며 사적 136호로 지정된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라고 전한다.
제단은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여 하부는 둥글며 그위에 네모단 단을 쌓아 올렸다. 둥근단의 지름은 8.7m이며 네모난 단은 6.6m이며 네모난 단은 6.6m의 정방형이다.
참성단중수비는 참성단에서 동쪽으로 직선거리 100m 정도에 위치한 참성단 보다는 조금 낮은 봉우리의 동남쪽 아래를 지나는 등산로에 옆에 있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하였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에 수축하였고 숙종 26(1700)에도 보수하였다. 칠선녀에 의해 전국 체육대회의 성화가 채화되는 곳 해마다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며 전국 체육대회의 성화가 이곳 참성단에서 칠선녀에 의해 채화되어 경기장으로 봉송된다.
한반도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마니산의 참성단은 한라산의 백록담과 백두산의 천지까지의 거리가 똑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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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막해수욕장

강화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동막입니다.
동막해변은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여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강화남단에 펼쳐진 갯벌은 무려1천8백만평이며 물이 빠지면 직선 4km까지 갯벌로 변합니다. 검은 개흙을 뒤집어 쓰고 기어가는 칠게,가무락,쌀무늬고둥,갯지렁이가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밀물 시에는 해수욕을 썰물 시에는 갯벌에 사는 여러 가지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가족단위의 여름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인근 분오리돈대에 오르면 강화의 남단갯벌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인천국제공항도 보입니다.
또한 주변에 함허동천 시범야영장 및 정수사 등의 볼거리가 있습니다.

※ 갯벌생태계의 보존을 위하여 생물들을 눈으로만 봐주세요.
관광객들이 생물들을 포획하면 갯벌은 순식간에 아무도 살지못하는 곳이 되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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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랑성내에 아늑히 자리잡고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72)에 아도화상이 처음 창건하고 진종사(眞宗寺)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후 고려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귀한 옥등을 시주했다해서 전할전,등불등자(傳火登)를 써서 전등사로 개명한 사찰입니다. 이절의 입구에 있는 대조루 밑을 지나들어가면 정면에 보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보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웅전 안에는 1544년 정수사에서 판각되어 옮겨진 법화경 목판104매가 보전되고 있으며
정화궁주의 시주물로 전해 내려오는 청동수조와 옥등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명부전 맞은편 왼쪽 언덕을 약100m 오르면 조선 왕실의 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처음 강화에는 마니산에 사고를 설치하였다가 1660년 이곳 전등사 경내로 옮겨 1678년이래 서적을 보관하였고 그후 전등사는 사고를 지키는 사찰로서 왕실의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경내에 있는 보물제393호 범종은 중국종으로 중국 하남성의 숭명사에서 북송시대(1097), 고려 숙종2년에 주조된것으로 우리나라 종과는 달리 종머리에 음관이 없고 용머리 주위에는 아름다운 16개의 연잎이 둘려 있는것을 볼수 있으며 견대와 요대사이에는 8괘가 둘려있어 특이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때는 승군 50명이 전투에 참가 하기도한 호국 불교의 사찰로 당시 조선수비대장이던 양헌수 장군 승전비가 전등사 동문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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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산성

고려 고종 때 강화도로 천도하며 쌓은 성 강화산성은 고려 고종 때 강화도로 천도하며 쌓은 성이다. 몽고의 침략에 항전한 호국의 현장인 셈이다.
1259년 고려가 개성을 환도하기 전 성을 헐었는데 조선초에 다시 보수됐다가 1637년 병자호란 때 청군의 침략으로 파괴됐다. 1677년 조선 숙종 때 다시 대대적인 개축공사를 했다. 하지만 병자호란 때 청군의 침략으로 다시 파괴되는 등 곡절을 겪었다.

근세에는 병인, 신미양요와 일본의 침략을 겪은 아픔의 현장이다. 성안에는 남쪽에 안파루, 서쪽에 첨화루, 동쪽에 망한루, 그리고 북쪽에 진송루 등 4대문이 있었다. 온갖 시련을 겪고 세월이 흐르며 성곽과 문루가 없어졌지만 지난 1974년에 남문을, 1977년엔 북문을 복원했고 서문은 다시 개축했다.
북문에서는 멀리 휴전선 . 넘어 장단과 개성의 송악산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고향을 북쪽에 두고 있는 이들은 이곳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일본의 강압으로 한일수호조약을 체결한 뼈아픈 역사의 현장 강화성 서문 옆에는 연무당 옛터가 있다.

이곳은 강화부의 군사들이 훈련하던 집이다.일본의 강압으로 한일수호조약을 체결한 뼈아픈 곳이기도 하다. 이 조약으로 인해 인천, 부산, 원산의 항구가 개항되고 새로은 문명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지만, 결국 일본에게 36년 간 나라를 빼았기는 결과를 맞았다.
신문물이 들어온 현장임과 동시에 민족시련이 시작된 반성의 터다.강화성에는 동서 양쪽에 두 개의 수문이 있는데 이 안에는 김상용 순절비가 있다.
병자호란 당시 우의정이었던 김상용 선생이 강화에 와 있다가 청군의 침입으로 강화성이 함락되자 강화성남문에서 화약에 불을 질러 자살했다. 이 충절을 기리기 위해 김상용 선생의 후손인 김창국이 남문터에 세운 비가 바로 김상용 순절비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글씨가 마멸되자 후손인 강화유수 김매순이 원비와 같이 새 비를 세우고 옛 비를 비각 밑에 묻었다.

지난 1976년 11월 23일 고려궁터 진입로 확장공사로 비각을 옮기던 중에 지하에서 원비가 출토됐다. 지금은 원래의 비와 함께 새비가 나란히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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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관

강화를 대표하는 방문해볼 만한 곳 강화도에는 전적지와 궁궐 등 여러 유적을 가지고 있는데 다 둘러보자면 꽤 많은 시간이 든다.
이곳에 미리 들러 유적을 관람할 것인지 미리 정보를 가지고 떠나는 것도 시간을 아끼며 알차게 여행할 수 있는 지혜를 발취하는 방법이다.
특히 시간이 없는 여행가들에게 강화역사관은 강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꼭 방문해 볼만한다.

역사관이 문을 연 것은 지난 1988년 9월 14일 이다. 1984년 계획을 세운 이래 5년여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0년 유물재배치 사업을 실시하여 제1실 개국시원,제2실 강화의 문화, 제3실 강화의 전쟁사, 제4실 강화의 전쟁사 등 모두 4개방으로 꾸며져 있는데 철모와 삼지창, 협도 등 전쟁과관련된 유물도 상당수 있어 우리조상의 국난극복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관람정보
-입 장 료 : 청소년,군인(개인: 700, 단체 : 600 어른(개인:1,300, 단 체:900)
-개방시간 : 하절기(09:00∼18:00), 동절기(09:00∼17:00)
-휴 관 일 : 연중무휴
-주 차 장 : 대형 30대
-소요시간 : 60분
-주요시설 : 강화역사관 , 갑곶돈대, 갑곶리탱자나무 금속활자중흥비,해선망어선
-편의시설 : 화장실 2동,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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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

바닷바람도 쐬고,갈매기도 보고 그리고 문화유적도 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보문사를 가려면 외포리선착장에서 석모도행 배를 타야 합니다.
배를 타기 전에 선착장 오른편 얕은 산 아래에 삼별초 항쟁비가 서있습니다.배를 타기
전에 갈매기들이 좋아하는 새우깡을 사세요.
해가 좋은 날에는 삼량염전에서 가득히 쌓인 소금탑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보문사 아래에서 먹는 새우튀김,쑥튀김과 인삼막걸리 한잔도 석모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죠.따스한 날에 오시는 분들은 삼량염전을 지나 민머루해수욕장에 가셔서 아이들과 함께 게랑, 조개랑 찾아보세요.
그러나 그 생물들도 집과 가족을 떠나면 살 수 없답니다.
다른
생물을 존중하는 예쁜 마음도 함께 가르쳐주세요.

- 관광코스
강화역사관(갑곶돈대,갑곶리탱자나무)(30분)20분 → 외포리삼별초항쟁비(10분)→외포리선착장30분→석포리선착장15분→삼량염전(30분)15분 → 보문사(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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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광성보는 조선 효종 년 에 설치 되었으며 9 (1658) ,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돈대가 축조되었다.
영조 21년(1745)성을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고 안해루(按海樓)라는 현판을 달았다. 고종 3년(1866) 프랑스의 극동함대와 치열한 격전(병인양요)을 치르었으며,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당시 미국의 아세아함대가 이 성을 유린하였으며, 우리 수비군은 탄환 및 화살이
떨어지자 어재연장군 이하 전 장병이 백병전으로 맞서 용감히 싸우다 전인원이 장렬히 순국한 곳이다. 광성보 내에는 신미양요시 순국한 순무천총 어재연, 동생 어재순의 쌍충비와 무명용사들의 합장 묘인 신미순의총 그리고 1977년 전적지를 보수하고 세운 강화 전적지 보수정화비 등이 있다.

국방유적으로서의 광성보광성보는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해안에 소재하고 있으며김포와 마주보고 있다.
고려시대의 성을 1618년(조선 광해군 10년)에 외성을 보수하고 1656년 광성보를 설치했다.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돈, 화도돈, 광성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보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된 것은 1745년이다.
이곳은 신미양요의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표방하면서 아세아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조선군 지휘관인 어재연 장군이하 전용사가 용감하게 싸웠는데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칼과 창이 부러지면 맨주먹으로 싸워 한사람도 물러서거나 포로가 되지 않고 모두 장렬히 순국하였다.

당시 미국의 병기는 9인치 포와 8인치 포등 85문의 대포와 최신무기로 남북전쟁과 스페인 전쟁을 겪은 백전노장인 1230명의 정예군인데 비해서 우리 조선군은 심지에 불을 당기는 화승포 3문과 구식장총 몇 정과 화약4000근 군량미 100석에다 300명 미만의 전투 경험이 적은 미약한 병력이었다.
이후 미군들은 물리전에는 이겼으나 정신전에는 졌다라고 술회하고 있다.신미양요때 성책과 문루가 파괴된후 폐허가 되어 있는 것을 1977년 광성돈, 안해루, 용두돈과 59명의 무명용사의 신미순의총, 어재연장군 형제의 쌍충비각들이 보수 정화되었다.

병인양요 당시 순무중군인 어재연 장군이 「우리는 이제 피할 곳도 없다. 적병은 이 포대를 좁혀오니 죽기로써 싸워라」고 독전하여 앞장서서 싸웠으며, 이때에 군인도 아닌 동생 어재순이 달려와 합세하려 하므로 형 어재연 장군이 말하기를「군인은 군인의 갈길이 따로 있으니 너는 어서 네 갈길로 가거라」하고 말하니까 「나라가 위급한 이때에 어디를 갑니까?」하고 합세하여 전군을 지휘하며 분전하다가 두형제가 순국하였다.
이두 형제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쌍충비각을 세우게 된 것이다.
무명 용사의 신미순의총은 광성보안에 있는 쌍충비각에서 좀 떨어진 아래 등성이에 있다. 1871년 신미양요때 용감하게 적과 싸우다 순국한 59인의 이름없는 무명용사들을 7개의 분묘에 합장한 것이다.
천연의 요새 용두돈대는 광성보 성문에서 고개를 넘어 10분쯤 가면 바다로 용의 머리처럼 쑥 들어낸 돌출부의 암반위에 세워진 절묘한 돈대로 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병인 신미양요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져 성곽이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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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

외포리에서 선편으로 바다를 건너 차량으로 15분간 들어가면낙가산 서쪽바다가 굽어 보이는 곳에 보문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가 금강산으로부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절을 세우고 보문사라 하였습니다.보문사는 우리나라3대 관음성지로서 절을 창건 후 14년이 되던 해에 고씨성을 가진 어부가 바닷가에서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낚아올려 절의 우측 석굴에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로부터 이 석굴에 기도를 하면기적이 이루어져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절 뒤편에는 마애석불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앞에서 보이는 서해풍광 또한 일품입니다. 보문사 경내에는 300여명의 승려들이 수도했을 당시 사용하였다는 큰 맷돌과 향나무, 1975년에 주조한 범종이 있습니다
.

• 도선료 (왕복요금)소인 600원 | 대인 1200원 | 승용차 14000원 | 25인승이하 승합차 23000원 | 25인승이상 승합차 3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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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이곳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 (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고종3년(1866)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로즈)극동함대 및 고종 8년(1866)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로저스)아세아 함대, 고종 12년(1875) 8월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이다.
당시 프랑스와 미국,일본의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진데 비해 우리 군은 사거리도 짧고 정조준도 안되는 열세한 무기로 외세에 대항해 싸웠던 것이다. 특히 일본군함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에 강압에 의한 강화도 수호조약(병자수호조약)를 맺어 인천, 원산, 부산항을 개항하게 되고 또한 우리 나라의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이 진에는 병마첨절제사 1인, 군관11인, 군사 320인, 전선 3척이 주둔하고 있었다 한다. 이곳은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으로 애국애족 및 호국정신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1973년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전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방유적으로서의 초지진강화의 동남단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하고 사적 제 22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김포군 대명리와 마주 보이는 곳이다.

300년전 1656년 진이 설치되고 1679년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이 축조되어 이진에 소속되었다. 그리고 6문의 포가 설치된 황산포대와 12문의 포가 설치된 진남포대가 있었다.
진장으로 1666년에는 병마만호가 있다가 1763년에는 첨사가 있었고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 18명에 배가3척 배치되어 있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일본 군함 운양호 침공등 근세까지 줄기차게 싸운 격전지이다. 1871년 4월 23일 미국 로저스가 지휘하는 아시아 함대가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할 때 450명의 육전대가 초지진에 상륙하여 덕진 광성의 제진을
공략하였다. 1875년 8월 21일 일본 군함 운양호가 초지진 포대와 격렬한 포격전을 벌여 싸운 강화도 조약의 시효진이다.
성축과 홀로남은 노송에는 당시의 포탄자국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 함대에 맹포격을 가했던 대포 일문이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당시의 격전지인 길상면 초지진에 옛 모습 그대로 옮겨져 사학가는 물론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대포는 길이 2.32m 입지름 40cm의 거포로 일정때 일본 모 고관이 뜯어다 자기 별장에 기둥 밑받침으로 쓴 것을 해방 직후 고 장택상씨가 소장한 것으로 장씨의 현관 기둥으로 보관하다가 그의 아들이 초지진 복원소식을 듣고 기증한 것으로 오늘까지 남게된 유서깊은 유물이다.
1644년 유수 홍중보가 창설한 곳이다. 1666년 현종 때 유수 서필원이 병마 만호로 수직할 것을 상주 하였더니 1763년 영조대에 와서 유수 정실 이 첨사 겸 감목관을 보내 수직하게 하였다. 배치인원은 병마첨절제사 1명,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 18명, 목자210명, 군량미 106석, 첨향미 103석, 간장 6독, 군기와 군용품 약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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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지석묘

사적 제137호로 지정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316번지의 고인돌은 북방식이다.
현재는 지금 남아 있는 2개의 지석이 덮개돌을 받들고 있는 형태로 마치 통로와 같은 모양이다.즉 입구 역할을 하는 양끝의 마감돌이 없어진 것을 뜻한다.
지석의 크기는 서쪽의 길이가 4.50m, 두께는 0.60m이며, 높이는 1.40m이고, 동쪽 지석은 길이가 4.64m, 두께 0.80m, 높이 1.40m이다. 덮개돌(蓋石)은 장축의 길이 6.50m, 너비 5.20m, 두께는 1.20m이며 전체 고인돌의 높이는 2.60m이다.
고인돌을 이루고 있는 덮개돌의 석질은 강화도에 흔한 화강 편마암이다.
이 고인돌의 주변에 이러한 규모의 석재가 없는 것으로 볼 때 돌산이나 해안 등지에서 바위를 운반한 것으로 추측되고있다.
그 예로 마니산에는 자연 판상석을 떼어 낸 흔적을 찾을 수 있다.그러나 그러한 대형 판석의 채취와 운반 기술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으로 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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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산

소재: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내가면, 강화읍, 송해면 일원

고려산(436m)의 옛 명칭은 오련산입니다.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다섯색의 연꽃이 피어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는데 적, 백, 청, 황, 흑색의 다섯색깔의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적련사(적석사), 백련사, 청련사, 황련사, 흑련사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고려산은 그 인근에 130여기의 고인돌을 품고 있으며 고려산 북편 시루미산은 연개소문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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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210-3

적석사는 고려산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다섯색의 연꽃이 피어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합니다. 그 중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를 세웠는데
그곳이 이 절의 전신입니다.

적석사 뒤편 산정상은 낙조봉이라 불리며 이곳에서의 낙조는 강도팔경의 하나로 꼽힐만큼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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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법당 서쪽의 맑은 물을 보고 정수사로 개칭

마니산 동쪽에 자리잡은 정수사는 전등사,보문사와 더불어 강화의 중요한 사찰중의 하나이다.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회정선사가 마니산의 참성단을 참배한 후 이곳을 보고 불자가 가히 삼매 정수할 곳이라 하여 사찰을 세우고 정수사(精修寺)라 했는데 그 후 함허대사가 절을 중수한 후 법당 서쪽의 맑은 물을 발견하고 정수(淨水)로 바꾸었다.

특히 건물 후면 공포 는 조선초기의 건축양식을 잘 (拱包) 나타내고 있어 건축 당시의 세부 건축 형식을 제대로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 안평대군이 쓴 금자경 세 권과 함허대사의 부도탑이 있는 정수사에서는 대웅전의 창살연꽃무늬도 볼 만하다. 보물 제161호 대웅전의 창살연꽃들이 살아 있는 듯 조각이 아름답고 특이해 보물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이 꽃문살은 꽃병으로부터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는 모습이 살아 있는 듯해 경이롭다.
이 사찰까지는 약 30분 정도 함허동천을 따라 걷는데 경관이 아름답고 동쪽 바다로
흘러내리는 계곡도 시원하다.계곡 입구에는 시범야영장이 조성되어 있고 이곳에는 야영장,취사장, 놀이시설, 주차장까지 갖춰져 있다.계곡을 따라 200m정도 경사진 암반에 수량이 많을 때는 폭포의 장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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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머루해수욕장

위 치 : 인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개 요 :
민머루 해수욕장은 주변 경관이 뛰어나고 물이 빠지면 게, 조개, 낙지 등을 잡을 수 있습니다. 물이 빠지면 맨발로 갯벌에 들어가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며 아이들과 살아 움직이는 생물들을 관찰하다가 바라보는 낙조도 환상적입니다.
백사장의 길이가 약 1KM정도 펼쳐진 곳으로 해수욕과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석양을 조망할
수 있으며,어패류를 직접 채취할 수 있는 자연 학습장과 인근의 어류정항,장곳항이 있어
배를 타고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또한 , 인근에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하였다는 보문사와 마애석불이 있어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도로안내 : 서울신촌 -> 강화읍 -> 외포리선착장 -> 선수 선착장
대중교통:인천버스터미널-> 강화읍(1시간 10분소요)
지역특산물 : 숭어, 우럭, 가무락, 김, 밴댕이, 새우젓, 숭어, 꽃게, 병어, 우럭
(문의 - 경인북부수협직매장 031-989-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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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 박물관

석류 등과 살아있는 파충류 및 애완동물들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게 된다.


전시실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제1전시장에는 바다와 육지 등 자연환경속에서 서식하고 있는 조류, 동물류, 악어 등이 살아가는 모습을 디오라마 기법을 이용하여 생동감 있게 설치하였고 제2전시장에는 아마존강 유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나비 등 여러 종류의 곤충과 바다에 서식하였던 말미잘 등을 전시하였다.


3전시장에는 아름다운 색채를 가진 국화조개를 비롯한 모양이 다양한 여러종류의 패류를 전시하였고 제4전시장에는 공룡알 화석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광채가 나는 보석의 원료가 되는 수정체의 원석 등이 전시 되어 있다.


 


전시장 밖에 설치되어 있는 유리집에는 열대지방의 대자연속에서 살고 있는 살아있는 이구아나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파충류와 애완용 조류 및 동물들을 전시하여 어린이나 학생들에게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박물관 주변에 쥐라기 공룡시대에 살았던 날아다니는 익룡과 티라노사우루스 등 대형공룡을 제작 설치하여 학생들에게 또 다른 다양한 볼거리로 제공되게 된다.


연 락 처 : 032-934-8872∼3 (FAX 032-934-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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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끼우주센터

어린이에게 우주항공에 대한 신지식의 장이 되고자 전시와교육을 통해 산지식을 획득해 나갈 수 있도록 재미있는 설명,각종 우주관련 전시 및 우주 항공에 대한 원리를 익힐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력을 키워나가는 기회를 제공


 


옥토끼 운주센터는 과학적 사고력을 향상 시키고 정서를 풍부하게하는 공간으로써, 야외 공원에 계절별로 다양산 꽃들이 만발 하도록 하여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고 평안한 느낌을 제공하며 나아가 우리의 희망과 꿈인 어린이들이 소중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데 보탬이 될 각종 자연 학습장을 제공함


 


안내는 032-937-6917~9(옥토끼우주센터)


기타 자세한 내용은 옥토끼우주센터 홈페이지


http://www.oktokki.com 참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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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미애월드

2009 3월 개장된 강화약쑥 테마공간 「아르미애월드」는 불은면 삼성리 농업기술센터 일대에 5 2,976㎡ 규모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아르미애」란 쑥의 학명인 Artemisia의 첫 자와 한자어 애()를 조합한 특구의 대표브랜드로 여성에게 특히 좋기로 유명한 약쑥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한다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강화약쑥테마 체험공간인「아르미애월드」를 찾아가면 랜드마크격인「약쑥웰가」가 제일 먼저 눈에 띕니다. 모던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단장한 약쑥한우전문식당에서는 고품격 약쑥한우, 쑥냉면 등의 깊은 맛을 즐길 수 있으며, 멀리 외포리 바닷가 까지 보이는 야외 테라스를 포함하여 220석 대규모로 단체관광객들의 입맛과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1층에는 다양한 약쑥제품과 품질 좋은 강화농특산물을 판매하고 있고, 쑥족욕, 쑥좌훈, 쑥산소찜질방 등 약쑥을 이용한 체험장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도자기 체험실도 있습니다.


 


약쑥웰가 건물옆에는 농업의 역사와 첨단농업기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농경문화관과 주목 9,000주를 미로 형태로 심어 놓은「온새미로공원」이 있습니다. 농경문화관은 어린이들에게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농업전시관입니다. 미로공원의 이름인 「온새미로」란더함도 덜함도 없이 처음 그대로라는 순우리말이며, 미로의 끝을 찾으면 고증을 통해 설계된 조선시대의 온실이 건립되어 있어 옛 선조들의 과학적 영농의 산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관람객 휴식공간인 잔디광장과 강화약쑥가공공장이 있습니다.


약쑥가공공장에는 강화약쑥을 원료로 한 와인, , 뜸기구, 엑기스, , , 음료 등을 생산하는 가공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사전 예약시 가공공장 단체 견학도 가능합니다.


 

남취당의 한옥이야기

업체명 : 남취당의 한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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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번호 : 137-18-31867
주소 :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해안남로 1066번길(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84-10번지) 간이과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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